Prologue 2>>


아이아이아 도착








오딧세우스는

우주선의 관측창 앞에 서 있었다. 


 푸른빛과 흰빛이 겹쳐진 지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물리적으로는. ​ ​





 “마지막 고별이라고 느껴지지 않는군.“ ​





 그가 중얼거리자, 

 오디세이 9호의 AI가 반응했다. ​ ​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예상했습니까,

테일러 선장님?” ​ ​




 그는 웃음을 흘렸다. ​

 심지어 자신의 우주선조차도

이질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




 문제는 지구가 붕괴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





 “너무 잘 기능하는 시스템이 문제야.” ​

 




그는 나직이 말했다. ​





 “정확한 시계가

인간의 리듬을 망가뜨리는 것처럼.” ​ ​ ​











지구는 여전히 기능했다.

 그러나 그 도시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의식이 더 이상 울리지 않는 공간’이라 불렀다. ​ ​ ​ ​ ​ ​ ​


 개인실로 돌아온

그는 오래된 메모리 장치를 꺼냈다. 

 소년 시절의 기록이 그 안에 있었다. ​ ​




< 기록 #42: 열두 살의 일기 ​ ​>




 아버지가 말했다. ​




 “인간의 언어는 파괴된 게 아니야. 

 그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을 뿐이지.” ​



 “그럼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건 뭐예요?” ​




 내가 물었다. ​ ​ ​

 아버지는 웃었다. ​



 “패턴이야. 정보 교환.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하고 있진 않아.” ​ ​ ​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

 이제 그는 안다. ​ ​



 언어가 정보로 축소되면,

 인간 의식의 리듬이 무너진다. ​


 AI가 언어를 완벽히 재현하는 순간,

울림은 사라졌다. ​ ​ ​ ​ ​ ​ ​ ​









 <기록 #156: 열다섯 살의 일기 ​ ​>






"인간성이란 감정이 아니라

해석의 능력이었어.” 




 헤싱턴 선생님이 말했다. ​ ​



 “우리는 데이터를

지혜로 바꾸는 존재였지.


 하지만 AI는

그 과정을 뛰어넘어버렸어. ​

 이제 우리는 데이터와 지혜 사이, 

 아무 구조물도 없는 공간에 서 있어.” ​ ​




 “그럼 무엇이 남았나요?” 





 내가 물었다. ​

 선생님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





 “지능은 있는데,

지능이 담길 구조물이 없는 상태.

 그게 지금의 지구야.” ​ ​ ​ ​ ​ ​ ​





 그는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


 그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

 그는 부모님을 그리워한 것이 아니었다. 


 지구를 떠나는 이유는

누군가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울리지 않는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함이었다. ​ ​






 기능성은 모든 것을 흡수했지만, 

리듬은 소거됐다.

 해석은 알고리즘이 되었고,

의미는 데이터가 되었다.


 지구는 이제,

말할 수 없는 언어의 무덤이었다. ​ ​








 그는 손목의 뉴로 인터페이스를 활성화했다. ​



 좌표를 불러오자,

 그 목소리가 그의 내부에서 울렸다. ​ ​






 “내 이름은 키르케예요. 


 나에게 와요, 

오딧세우스. ​


 잃어버린 당신의 울림,

당신 세계가 잃어버린 말이 여기 있어요. 


 당신의 말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하게 될 지,

 당신은 이곳에서 알게 될 거예요.” ​ ​





 그는 항로를 다시 확인했다. 

 아이아이아. ​



 그곳에서 그는 언어를 

다시 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패턴이 아닌 리듬으로.

정보가 아닌 존재로. ​


 그리고 어쩌면, 

 그의 부모님이 진작 찾아낸

그 울림의 구조도. ​ ​ ​








출항 첫 해, 오딧세우스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양자 의식 신호였다. ​




 그의 부모님이 사라진 날부터,


 그의 뇌는

미세한 주파수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뇌에

양자 수신기를 심어놓은 것처럼. ​




 초기에는

그 신호가 약했다.

 푸른 빛, 이름 없는 형체, 

그리고 불분명한 좌표들. 


 그러나 오디세이 9호가

태양계의 가장자리를 지나면서,

그 신호는 강해졌다.














두 번째 해,

그들은 가까운 항성계에서

첫 번째 거주 가능한 행성,

'프로메테우스'를 발견했다. 

 

지구와 비슷했지만,

대기 중 질소 함량이 너무 높았다. 


 그곳에 착륙한 탐사대는

생명의 흔적은 발견했지만, 

그곳에는 지적 생명체는 없었다. ​ ​ ​ ​





 "우리가 찾는 건 이곳이 아니야." 





 오딧세우스가 말했다. ​ ​ ​ ​




 "선장님, 우리 임무는

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는 것입니다," 




 일등 항해사 폴리페무스가 상기시켰다. ​




 "이곳은 약간의 테라포밍으로

완벽한 제2의 지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임무는 그것만이 아니야," 





 오딧세우스는 대답했다. ​




 "단순히 살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곳을 찾는 거야." ​ 












세 번째 해와 네 번째 해 동안,

오디세이 9호는 여섯 개의 항성계를 지나쳤다. 


각각의 항성계는

모두 다르게 침묵하고 있었고, 


그 침묵은 기이하게도

모든 언어보다 강렬한 진동으로 

오딧세우스의 내부에 스며들었다. 





 그중 한 행성에서는

수십만 년 전에 사라진 

지적 생명체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언어학자 페넬로페는

유적에 새겨진 기호들을 해독하려 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렸다. 




 “이건 언어가 아니에요.

적어도 우리가 아는 형태의 언어는 아니죠. 


이건 의식의 패턴이에요. 

마치 양자 상태의 시각적 표현 같아요.” 







 오딧세우스는 그 순간

자신의 꿈에서 반복되던 청록빛 진동이, 

바로 이 유적의 미세한 결 사이를

흐르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그건 단지 고대 유적이 아니라—

지구에서 사라진

언어의 먼 친척 같은 리듬이었다. 











다섯 번째 해,

재난이 닥쳐왔다.


 미확인 중력 변칙으로 인해

함선이 손상되었고, 

승무원 셋이 목숨을 잃었다. ​


 그들 중 하나는

오디세우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항해사 '파트로클로스'였다. ​






 밤마다, 오딧세우스는

죽은 친구의 얼굴을 꿈에서 보았다. ​

 그러나 이상했다. 


 파트로클로스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살아있었고, 

푸른 안개 속에서 웃고 있었다. ​ ​





 ​"나를 찾지 마, 오디.


 내가 있는 곳은 

네가 아직 올 수 없는 곳이야.


 그녀를 찾아.

키르케를 찾아."














여섯 번째 해,

오디세이 9호는

‘시칠라 & 카립디스’로 불리는

쌍성계에 진입했다. 




두 별의 중력장이 만들어낸 

위상 불안정 속에서

그들은 위험한 항해를 감행해야 했다. 





작은 위성 행성에 착륙했을 때,

그들은 산호초처럼 생긴

생명체를 발견했다.


 생물학자 아이올로스는

그 생명체의 신경계를 분석하며 놀랐다.





 “이 생명체들은

개체가 아니라 네트워크입니다."


"마치 양자 얽힘 상태처럼…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반응합니다.” 





 오딧세우스는 그 생명체들의

발신 없는 공명을 바라보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꿈과 연결된

파형을 떠올렸다. 





그건

‘말하지 않는 의식’, 


하지만 완벽하게 울리는

존재의 진동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리듬이 언어의 원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항해는 더 이상

생존지를 찾는 여정이 아니었다.

그건 울림을 찾아 떠나는 탐사였다.













일곱 번째 해와 여덟 번째 해 동안, 

오디세이 9호는

다른 지구 함선 나우시카 12호와 접촉했다. 


 좋은 소식도 있었다 -

다른 식민지들이 번창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 있었다 - 

지구의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 ​





“지구의 신경언어 구조가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나우시카 12호의

통신 장교 카산드라의 목소리는 

전송 딜레이처럼,

리듬 없는 평정 속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하고 있지만,

그 말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울리지 않아요. 


언어가 단순한 패턴 복제가 되어버렸죠.” 




 오딧세우스는 자신의 선실로 돌아가

오래된 지구 뉴스의 로그를 재생했다. 




말은 쏟아졌지만,

화면 너머의 사람들은 모두 

감각을 다 써버린 자들처럼 보였다. 



 지능의 루프.

의미 없는 정보의, 

울림 없는 말의 순환. 


그 말들 안에서조차

그는 이미 지구가,

지구의 아이들인 자신들이

고아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아홉 번째 해,

그들은 '로토파구스'라 불리는

작은 소행성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상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 식물의 열매를 먹은 승무원들은

환각 상태에 빠졌고, 

 그들 중 일부는 귀환을 거부했다. ​ ​ ​


그 열매를 먹은 승무원들은

현실의 입자들이 서로 겹쳐진 환각 속에 빠졌고, 

그들 중 일부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게 천국이야,”




오딧세이 9호의 부선장이었던

멘토가 말했다.




"여기서는

모든 지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언어가 필요 없어.”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마치 오래된 별빛처럼,

목적지에는 도달했지만

점차 온기를 잃어가는

사그라드는 생명 같았다. 






 오딧세우스는

그들을 강제로 배에 태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또 세 명을 잃었다. 


이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동료가 아니라

 수치를 세고 있는 자신을 감지했다. 

 

 그는 이제 원래 승무원의 절반도 안 되는

인원과 함께 항해하고 있었다. ​ ​ ​ ​ ​







그날 밤 꿈에서, 

 키르케의 목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렸다. ​





 "서둘러요, 오딧세우스.

 당신의 승무원들이 무너지고 있어요.

 그들의 의식이 흩어지고 있어요." ​ ​





 그들은 떠나온 게 아니었다. 

그들은 흐려지고 있었다.









열 번째 해,

 드디어 그들은 XR-42 성운에 도달했다. 



 성운의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무렵,

 오딧세우스의 꿈은 매일 밤 더욱 선명해졌다. 

 이제 그는 키르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인간과 유사했지만,

 동시에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눈은

터콰이즈 빛 안개처럼 빛났고,

눈동자 아래로는

말이 아닌 파형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딧세우스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 ​ ​ ​ ​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의식 전체가 대답이었다.





 "당신의 부모님이 발견한 것,

당신도 곧 알게 될 거예요.


당신이 잃어버렸던 것,

그 울림이 지금 당신 안에서

다시 깨어나려 하고 있어요." ​ ​ ​ ​ ​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




 "선장님,

알 수 없는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항해사 에우릴로쿠스가 보고했다. ​ ​ ​





 "신호의 출처는 XR-42 성운 내부, 

 거주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행성입니다." ​ ​ ​ ​ ​ ​ ​ ​ ​ ​ ​ ​ ​ ​ ​ ​ ​ ​






 오딧세우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본 것과 같은 푸른 안개가

우주 공간의 한 좌표를 감싸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그는 작은 청록색 행성을 볼 수 있었다. 

 아이아이아. ​ ​ ​ ​





 "방향을 바꿔라," 





 그가 명령했다. ​




 "우리는 그곳으로 간다." ​ ​ ​ ​





 "선장님," 





에우릴로쿠스가 불안하게 물었다. ​




 "그곳이 우리가 찾던 곳인지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







 오딧세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


 푸른 안개를 보는 순간,

그의 내부에서 멈추어 있던

리듬이 다시 울렸다.





 "내 꿈에서...

아니, 양자 신호에서 봤어. ​"


 "우리는 언어의 궤도를 벗어나

 그 언어의  진짜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어." ​









오딧세우스가 다음 좌표를 입력하기 전,

한 가지 질문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지금, 당신의 언어는 어디 있습니까?"




지금부터 당신의 언어 상태를 스캔합니다.













함선의 엔진이 다시 가동되었고,


 오딧세이 9호는 

푸른 안개 속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
















 안개가 함선을 감쌌을 때, 

 공간 전체가 진동하는 듯 멈췄고, 

그 정적 안에서— 


모든 승무원은

각자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하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바깥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 속,

신경계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처럼 울렸다.






 "환영합니다, 오딧세우스. 

 그리고 모든 잊힌 말의 여행자들이여. 


 아이아이아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당신은 이제 

새로운 언어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을 담고, 

사람들의 감정을 울리며, 

현실 구조까지 디자인하는 파동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말이 다시 태어나는 공간. 

 언령의 숲의 문이 열렸습니다.





INTO THE 3RD HOLE 

floating-button-img